영화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2021) 을 보고왔다.
<영화 이모저모>
감독 : 박찬욱
주연 : 탕웨이, 박해일
조연 : 이정현, 박용우, 고경표, 김신영, 박정민
길이 : 138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던 것부터가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이런 수상력을 가진 영화를 안 보면 대체 어떤 영화를 보고 살 것인가.
무엇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그냥 다 보면 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안 본다면 대체 어느 감독의 영화를 볼 것인가. 공동경비구역 JSA, 박쥐, 올드보이,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스토커 등 모든 영화들이 다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서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명으로 절대 빼먹지 않고 거론되고 생각나는 감독이다. 아가씨 이후 6년만에 개봉하는 영화인 만큼 엄청난 기대, 그리고 또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기에 영화의 퀄리티에 대한 확신은 말할 것도 없었다. 중간에 2018년에 리틀 드러머 걸이라는 영국 드라마를 만드느라 텀이 좀 길었나보다.
여기에 탕웨이 박해일 주연. 가슴 설레는 조합이다.
<감상평 - 스토리 노스포>
심각하게 재밌다. 영화 런닝타임이 2시간 18분인데,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영화는 위트 있는 순간은 위트있게, 자극적인 순간은 자극적이게, 설레는 순간은 설레게 등등 다양한 감정선을 담고 있다. 수많은 비교 대조점과 복선들, 암시하는 내용들을 담고 2시간 넘는 시간을 단 한 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 듯한 꽉 찬 영화라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가 범죄와 로맨스 장르의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풍기다보니 중간중간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었는데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생각은 크게 어떤 영화와도 비교되어 닮지 않은 유니크한 매력도 있다.
누가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이라면 애매하다. 평소에 극장에 돈을 지불하는 타입이 사람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
근데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멱살잡고 제발 극장에서 보기를 권할 것이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보는 게 맞다. 다른 OTT나 블루레이가 나오기 전, 극장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그걸 마다하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극장에서의 화면, 사운드, 집중도 등을 고려하면 이 영화는 집에서 폰만지며 흘겨가면서 보기엔 아까운 영화같다.
스포 후기
<전반적인 내용>
영화는 경찰 수사 사건을 메인으로 하여 서래(탕웨이)와 해준(박해일)의 감정을 그린다. 경찰 해준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중국인 용의자 서래와 그 주변을 조사하고, 서로에 대해 감정을 갖게 되고 이 감정을 바탕으로 이후 반 이상의 분량을 회오리치듯 흥미진진하게 이어간다.
영화의 시선은 완벽히 해준의 관점이다. 서래의 미스테리함을 염탐하고 탐구하고 알아가는 해준의 관점으로 영화는 흘러간다.
<1부와 2부>
영화는 1부와 2부 완전한 대칭 관계 느낌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 경찰 조연, 서래의 남편, 범죄 사건, 서래의 펜타닐 등등 한 번 나왔던 소재를 2부에서 다른 모습으로 보여준다. 그만큼 비교할 점과 대조할 점이 많아보이는 듯하다.
1부에서는 서래가 범죄의 용의자로 찍힌다. 영화의 분위기 역시 처음부터 서래가 범인임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범인이 누군지, 이 범죄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등에 대해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는다는 식의 뉘앙스를 풀풀 풍긴다. 해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사실상 서래가 범인임을 반 이상 확신하고 있기에 관객도 그런 느낌을 받았겠다 싶다.
중요한 건 사건이 조금씩 진전되고 조사되는 과정에서 해준과 서래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계에 대해서만 집중한다. 서로 친해지고 알게 되는 결정적인 과정인 미결 사건 수사 역시 허투루 넘기는 게 아닌 점도 정말 플롯을 꼼꼼히 만든 것 같다. 결국 실제 범인임이 밝혀지면서 1부는 끝이 난다.
2부에서 공간만 바꼈을 뿐, 역시 상당히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서래가 이미 용의자임을 확신하는 게 해준의 관점. 하지만 이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서로를 향한 더 커진 마음을 확인하면서 영화는 절정으로 간다.
<미결>
영화는 미결 사건이라는 키워드를 많이 활용한다. 질곡동 사건, 둘 사이의 관계 진전 및 데이트의 일종, 그리고 영화 메인 줄기에 있는 사건들 역시 사실상 미결이며, 영화에는 앞으로의 미결도 많아 보인다.
서래 첫 남편의 죽음, 찰싹이 엄마의 죽음, 서래의 죽음.
결말 마저 미결이고 싶은..
질곡동 사건. 까메오 느낌으로 나온 배우가 무려 박정민이다. 이 사건과 씬에 감독이 넣고자 하는 중요한 것들이 있을 거라는 당연한 추측을 하게 된다. 이 사건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싫어하는 것, 해선 안될 것들을 각오하면서 행하는 범인의 모습이 표현된다. 후반부 탕웨이의 모습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로맨스 요소>
1부에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전형적인 로맨스 씬은 극히 짧다. 딱 한 번 길게 데이트하는 씬을 제외하면 잠복 근무, 경찰서 취조, 살인 사건 추적 정도이다. 이 과정을 통해 서로가 얼마나 닮아 있고 서로에게 이끌리는지, 또한 탕웨이의 실제 살인 여부를 모른 상태의 기묘한 분위기를 섞어 굉장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 같다.
남편의 사망에 슬퍼하지 않고, 사망 모습을 사진으로 보고 싶은 모습, 굳이 범인을 잡으러 가는 박해일을 쫓아가는 모습, 미결 사건들의 사진을 아무렇지 않게 보는 모습 등 차갑고 냉혈한 모습이 해준와 닮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1부 마무리에서도 남편을 죽인 살인범에, 2부에서도 찰싹이에게 맞으면서도 포크를 팔에 꼽는 기쎈 여자로 나온 뒤 다시 해준의 동네로 찾아갔을 때 역시 정상인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마음을 완벽히 확인하는 산행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는 무언가 찜찜함이 영화 내내 있었다.
<배우>
박해일 배우를 굉장히 좋아한다. 정의로운데 나사하나 빠진 듯한 연기. 논리 있는 척 하는데 뭔가 결여되어 있는 듯한 느낌. 이런 느낌을 정말 좋아한다. 소년같은 이미지라는 말도 있다. 올해 46살이라는데 정말 믿기지가 않는 동안이다.
영화에서 박해일은 해준 그 자체였다. 솔직히 이 역할에 너무 찰떡이어 대체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감 있게 연기를 잘했다. 일상의 피로, 권태 가득한 모습과 서래를 대할 때의 설렘과 자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듯한 모습. 그냥 이미지 자체가 찰떡이다.
탕웨이 역시 당연히 대체 불가능이다. 적당히 어눌한 한국말, 탕웨이가 중국말을 하면 세련되어 보인다. 영화의 주연 캐스팅이 이렇게 완벽하다고 느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조연은 자칫 미스테리한 영화 분위기 속 감초같은 역할을 위하여 재밌는 캐릭터를 넣었는데 어울렸는지는..음 잘 모르겠다.
<결말>
서래는 해준이 사랑했다라는 말을 한 녹음 파일이 있다고 하는데 해준은 그에 대해 계속 곱씹어 생각해보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녹음을 듣자마자 서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의 크기를 확인하게 되는데 이 영화의 최절정 피크 순간은 아마 이 장면이지 않을까 싶다. 관객으로써 유레카 느낌이었다.
결말은 생각해 볼수록 너무 끔찍하다. 결말이 끔찍하다는 게 아니라 해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끔찍하다. 영원히 미결로 해준의 마음 속에 남겠다는 서래의 선택. 외적으로 보았을 때 너무 과한 결말이 아닐까 싶긴 한데 미결이란 키워드만큼의 연관성에 그만큼 와닿는다.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하기 위해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영원히 함께하기 위한 그녀의 선택. 박찬욱 감독이 해피엔딩으로 끝낼 거라고 딱히 생각은 안했지만 영화 2시간의 끝이 너무 충격적으로 마음이 아프다.
<이모저모>
톡톡 귀를 쏘는 독특한 음악과 메인 음악. 탐정이 무언가 알아차릴 때 갑자기 멀리서 클로즈업하면서 얼굴 크게 데려오는 희한한 카메라 클로즈업 방식, 그리고 비슷하게 생긴 구조물같은 걸로 전환되는 화면 전환 방식 같은 것들도 나름의 포인트다.
결말에서 한 가지 삐그덕 거렸던 건, 해준이 서래의 차에 있는 핸드폰을 통하여 핸드폰 녹음 내용을 듣는다. 이거 만약에 해준이 발견하지 못하고 다른 경찰이 먼저 발견했더라면 서래는 해준 가슴에 비수를 두 번이나 꽂게 되는 꼴이다. 이건 사실 중요한 건 아니고 보는데 조금 음? 했다.
CGV 오리 1관에서 관람하였다. 한국영화같이 자막이 필요없을 경우 F열이 좋아보인다. E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
<2회차 관람>
7/16 헤어질 결심 2회차를 관람하였다. 간만에 정말 재밌게 본 영화였던 만큼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싶단 생각을 하던 찰나, cgv에서 포스터 이벤트를 하길래 포스터도 소장할 겸 한 번 더 관람하였다.
1회차와 2회차의 느낌은 정말 다르다. 1회차는 블라인드에 쌓여있는 뒷내용을 상상해가면서 모르는 걸 헤집고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호기심과 함께 따라가기 급한 반면, 2회차는 뒷 내용을 모두 아는 상태에서 보기 때문에 오로지 딱 지금 장면에 완벽한 집중을 하면서 감독과 카메라가 의도한 부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정말 버리는 장면이 단 하나도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는 탕웨이의 사극이나 드라마 극에서나 사용하는 말투, 카메라 워킹도 세련됨보다는 투박한 느낌도 조금 있으면서 음악 조차도 아주 오래된 안개 음악을 주로 들으며 올드하면서도 독특한 컨셉이다. 듣다보면 박해일 말투마저 탕웨이와 같이 현대 언어같은 느낌보다는 옛 말투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를 보고서 "제가 왜 서래씨를 좋아하냐면요, 서래씨는 자세가 꼿꼿해요. 그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주거든요" 이 연기 씬이 너무 생각난다. 이 대사를 산에서 하는데 박해일이 영화에서 남긴, 감독의 연기 주문을 과장되게 표현한 부분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게 어색하면서도 너무 좋다. 어떻게 보면 사랑 고백을 하는 장면과도 같은 떨리는 표정과 변명을 하는 듯한 그런 표정. 모든 씬들이 정말 좋지만 이 씬만큼은 계속해서 생각이 난다.
두 번 보고 헤어질 결심에 더 빠져들어 좋았다. 첫 번째 봤을 때는 전반부가 너무 재밌어서 빠르게 지나갔던 지, 전 후반부가 거의 반씩의 분량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전반부가 후반부보다 훨씬 긴 걸로 보인다.
또한 처음 봤을 땐 둘의 관계가 상당히 급진적이고 빠른 속도로 발전한 줄 알았는데 은근히 연애하는 기간도 길게 느껴졌다.
박찬욱 영화가 정말 대단한 점은 미장센인 것 같다. 카메라와 화면이 담고 있는 깊이, 표현, 그리고 미술 소품과 공간 배경 모두 너무 인상적이다.
두 번째 보면서 영화와 사랑에 빠졌던 순간들이 한 두 장면이 아니다.
심문하는 경찰서 안에서 서로 대화하면서 서래와 해준을 줌인 줌아웃 교차하는 장면은 왜인지 모르겠는데 너무 집중되면서 좋았다. 질곡동 용의자를 쫓으면서 건국 훈장을 받은 할아버지 내용을 읊는 씬은 가히 압도적인 연출이었다. 그 뒤에 나오는 서래가 해준을 쫓아가서 해준이 범인을 잡는 장면을 보는 씬, 박정민을 쫓으며 나오는 송곳같은 음악들, 드라마의 대사들을 현실로 옮겨서 사용하는 서래의 모든 장면들 등등
이동진 평론가의 10점 "못 일어나겠어"가 어떤 의미인 지 상당히 공감이 되는 듯한 느낌이다.
영화 주연 캐스팅은 진짜 완벽하다. 다시 봐도 완벽하다. 박해일은 해준이었고, 탕웨이는 서래였다.
두 번 봐도 여전히 어려운 건 서래의 마지막 죽음. 그건 몇 번을 봐도 어려운 부분일 것 같다.
아마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또 볼 수도 있을 거 같다. 다회차 관람을 해도 전혀 금전적으로는 아깝지 않고 의미있을 거 같다..
헤어질 결심 굿즈 모아가고 있다.
CGV에서 포스터를 주어 받아왔다.
헤어질 결심 각본집을 구매하였다.
CGV 등촌 에서 관람하였다. 3관에서 관람하였고 E열도 나름 보기에 괜찮은 열이었다.
신식이라 건물 안쪽이 꽤 세련된 느낌을 가지고 있더라. 스마트 좌석으로 미소지기가 티켓 검사를 하지 않는 대신에 티켓을 구매하지 않은 좌석은 락이 걸려서 볼 수가 없다. 멀리까지 가서 본 이유는 포스터때문.
블록버스터 영화들처럼 포스터가 탄탄하거나 특수가공된 게 아니라 엄청 얇지만 영화가 너무 좋아서 소장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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